- 책 ‘아픔이 길이 되려면’ 감상평
- 꾸준히 나의 빈칸을 채워가겠습니다
안녕하세요 !
‘김종엽의 빈칸을 채워주세요.’ 입니다.
앞으로 김종엽이라는 사람의 빈 칸을 이 곳에 마구마구 채워 넣으려고 합니다 ^^
오늘은 먼저 좀 뜬금없지만, 도서리뷰로 시작을 하려고 해요! 저는 평소에 책을 시간이 생기는 대로 읽으려고 하는 편입니다. 이런 취미를 가진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시작은 어렵지만 막상 시작하면 절대 후회하지 않는 행위 중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글을 올리기 전에 제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인지 잘 보여줄 수 있는 것 중에 하나가 독후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판단을 내렸습니다.
“무거움”
나는 책을 읽고 마음이 뭔가 무거웠다. 나는 이 책에 대해서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내가 그럴 수 있을 만한 사람인가? 이 책을 읽기 전에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라는 책을 읽었었는데, 그 책과 달리 문체가 따뜻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사회역학이라는 학문을 통해 글을 전개를 해서 그런지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들이 책에서 묻어나왔다.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처절했고, 그들이 처한 상황을 극복하기위해 노력하고 버티며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그런 사람들을 두고 사회가 잘못됐다며 사회를 비판할 수 있을까?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지금의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며 기억에 남았던 내용이 있다.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기 전에 유서를 남긴다.”
“’까르르’ 웃다가도 주변을 둘러본다. 웃어도 되나 두렵다.” – p.182
위의 말은 세월호 참사 이후 생존 학생의 말이라고 한다. 나는 솔직하게 어떤 사건, 사고가 터져도 그렇게 슬픈 적이 없었다. 하지만 세월호 소식만큼은 내게 눈물을 흘리게 했던 뉴스였다. 그래서 그런지 이 내용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나는 어떤 길을 가고 있었는가?”
이 책을 같이 읽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있어서 그 시간에 참여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정리되지 않은 채 평소처럼 웃으며 인사하고 대화를 시작했다. 글 안에 성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는데,
사람 A가 그 부분에 대해서 발제를 했다. “만약 자신의 친한 사람이 성 소수자임을 고백했을 때 포용할 수 있나요?”
사람 B가 대답했다. “그게 무슨 상관인가? 어차피 남의 연애사 아닌가? 자신의 친척 중에서도 그런 사람이 있는데, 우리랑 별 다를 것이 없다.”
이 의견에 매우 동의했다. 그래서 나도 대답했다. “앞에 말하신 분의 의견과 굉장히 비슷해서 무얼 더 말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나와 다른 사람일 뿐이다. 틀린 사람이 아니다. 그냥 포용이랄 것도 없고, 똑같이 살아갔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는 주변에 그런 사람이 없었기에 이렇게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사람 C가 말했다. “포용이란 말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 말을 그 사람들에게 쓸 수 있는 단어인지부터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앞에서 주변에 성 소수자인 사람들이 없었다고 말씀하셨는데, 없는 게 아니고 그들이 말하지 않은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자신이 성 소수자의 마음을 들어줄 만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을 것일 수 있습니다. 주변에 없다고만 인지하는 것보다는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이 말을 듣고 굉장히 충격이었다. 그리고 깊이 반성하게 되었다. 나는 깨어있고 열려있는 사람처럼 살아왔다고 생각했었는데, 정작 삶에서 보여지는 행동과 태도들은 그게 아니었던 것인가? 스스로 좀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사실은 방관자처럼 살아갔던 것은 아닌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스스로 질문하며 고민을 하던 찰나에
사람 D가 발제했다. “만약 자신의 아들 혹은 딸이 성 소수자라고 고백했을 때 어떨 것 같은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선은 놀랄 것 같다.”, “그들을 받아주지 않는 사회가 바뀌도록 노력해야한다.”, “사회가 바뀌지 않는다면 이민을 보내겠다.”라는 내용이 오갔다. 물론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이번에 좀 의아했다. 아무도 자신의 자식을 안아주겠다. 위로해주겠다고 얘기한 사람이 없었다. 물론 그들이 하는 말에 그런 말들이 내포되어 있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좀 의아했다. 내가 지금 느끼는 생각들이 감성팔이하는 것 같아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성 소수자입니다.”라는 그 한마디가 얼마나 힘들고 어렵고 무거웠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 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안아줄 수 있는 일 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이것 밖에 안 떠올랐다.
“나는 어떤 길이 될 수 있는가?”
전에 읽었던 책(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이 떠올랐다. 그 저자가 내준 결론은 의식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느낌이었다. 말하고자 하는 것이 많았겠지만, 나는 이렇게 받아들였다. 그래서 나는 너무 추상적인 결론이라고 생각하며 불평했었다. 하지만 이것이 어쩌면 현실적이고 실현가능한 결론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사회를 바꿀 수 있을까? 사실 겁쟁이같은 생각일 수 있지만 혁명가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잘못된 것을 옳다고 말하고, 아픈 사람들의 말을 들어줄 수 있는 태도는 나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형, 사람이 착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가 뭐야?” – P.301
마지막으로 이 질문을 내가 조원들에게 발제했다. 신기한 것은 다른 얘기를 하는 것 같아도 공통점이 있었다. 공동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서로서로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나만 생각하기 바쁜 이 사회에서 착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남’을 얘기하고 ‘서로’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본능적으로 우리는 혼자서 세상을 살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앞으로 나는 어떤 길이 될 수 있을 지는 미래를 알 수 없기에 확신할 수 없지만,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방향으로 길을 걸어가고 싶다.